수원 삼성
수원 삼성을 거쳐간 외국인 - 킹갓 열전 : https://www.fmkorea.com/1705511003
수원 삼성을 거쳐간 외국인 - 병신 열전 : https://www.fmkorea.com/1606916456
* 북한 및 조선적 선수는 규정상 외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 수상은 대우 및 부산에서의 수상만 기술하였습니다.
* 제목을 부산으로 정한 이유는 대우 시절과 현대 시절의 기록을 한번에 기술하였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연고지인 부산으로 정하였습니다.
개요
개인적으로 이런식의 글 읽는걸 좋아해서 하나씩 썼는데 둘다 포텐이 가서 더 적어봅니다.
원래는 서울부터 쓰려고 했는데 서울은 다른분이 먼저 쓰셨기에 포항과 부산중 고민하다 부산부터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수원글 적으면서 2개 다 태클이 적지 않게 들어오더라고요.
저 역시 나름 K리그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게 보아왔지만 한 명의 팬에 불과하고 모든 선수를 알지는 못합니다.
내용에 의문인 부분이 있으면 댓글 달아주시면 확인하고 대댓 달겠습니다.
누구 없어서 비추 이런댓 달리면 진짜 힘빠져요...
전성기
97년 3관왕 K리그, 아디다스컵 (리그컵), 프로스펙스컵 (리그컵)
85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85년 아프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쉽 우승
1994~1996
MF 아미르 텔리고비치 '아미르'
58경기 3골
유고슬라비아의 패스마스터
유고슬라비아 청소년 대표팀 출신의 미드필더이다.
그러나 발칸 내전과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인해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해외이적을 추진하였고, 대우의 오퍼를 받아 한국에 오게된다.
185라는 작지않은 키 때문에 발이 빠르지는 않았으나 훌륭한 테크니션이었던 아미르는 뛰어난 패스와 테크닉으로 대우의 주전 미드필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특히 두번째 시즌인 95시즌에는 26경기 2골 7도움을 기록하며 95년 도움왕에 등극, 결혼까지 성공하여 부산에서 아들을 출산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96시즌을 앞두고 체중관리에 실패한 아미르는 폼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재계약에 실패하여 부산을 떠나게 된다.
수상
95 K리그 도움왕
1995~1997
FW 샤샤 드라쿨리치 '샤샤'
79경기 22골
대우, 수원, 성남의 전성기를 이끈 K리그의 레전드
수원편에서도 다루었던 K리그의 전설.
샤샤가 유고슬라비아에서 활동하고 있었을 때에는 유고슬라비아가 유고내전 등으로 불안정했던 상황이고 샤샤 본인이 레드스타 베오그라드 리저브팀에 머물렀기에 아주 값싼 가격에 데려올 수 있었다.
첫 시즌 8골을 기록하며 득점순위 5위에 머물렀던 샤샤는 두번째 시즌에 발목부상을 당하며 시즌동안 3골에 그치는 등 아쉬운 폼을 보여주었다. 특히 96년도 부임한 세큘라라치 감독의 샤샤 배제와 마니치 선호로 인해 대우를 떠날뻔 했으나 이차만 감독이 부임하면서 대우와 한 시즌을 더 보내게 된다.
이때 샤샤의 기량이 만개하는데, 마니치와의 투톱으로 해당 시즌 11골을 박아넣으며 리그 득점랭킹 5위, 4개의 도움으로 도움랭킹 4위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특히 해당 시즌은 삼손 김주성, 왼발의 달인 하석주 등의 주전 선수들과 이민성, 우성용 등의 유망주들이 함께 뛰며 K리그 최고의 팀 중 하나로 뽑히는 팀으로 그 팀의 주전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를 남게했던 이차만 감독과의 불화로 그는 떠나게 된다. 이차만 감독이 그를 질책하면서 머리를 때리려고 하자 샤샤가 격분한것. 이 사건은 기사로 나가며 샤샤의 이적설에 불을 지폈고, 그를 영입한 안종복 단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도중 IMF 파동으로 재정 악화가 시작된 대우에게 수원이 70만 달러라는 거금으로 이적 제안을 해오게 되고, 하석주, 마니치, 뚜레 등의 수위급 공격진을 보유하고 있던 대우는 수원으로 샤샤를 이적시키게 된다.
1996~2001
MF 제바드 투르코비치 '뚜레'
113경기 11골
대우 삼각편대의 일원
크로아티아에서 뛰던 뚜레는 청소년 국가대표와 성인 국가대표를 넘나들면서 좋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내전의 영향으로 해외 이적을 고려하던 뚜레를 영입한 것은 바로 아미르의 부진으로 고민이 깊어진 대우 로얄즈였다.
대우에서 많은 경기를 뛰며 안정환, 마니치와 함께 팬들에게 삼각편대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출중한 기본기와 왕성환 활동량을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뚜레는 특히 99년도에는 귀화를 선언하며 01년도까지 국내에 있을 경우 귀화가 가능하다고 말하여 한국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우 시절 주전으로 활약하던 뚜레는 00년 이후 폼 저하와 부상 등의 이유로 출전 횟수가 점점 줄어갔고, 이후 상호 해지하에 부산을 떠나게 된다.
여담으로 현재는 크로아티아에서 감독직을 맡고있으며 아직까지 부산에서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애정을 가진 선수이다.
1996~1997, 1999~2002
FW 라디보예 마니치 '마니치'
172경기 53골
바람의 아들
95시즌 영입되어 훌륭한 활약을 펼친 샤샤의 경쟁자로 데려온 선수이다.
세큘라라치 감독은 이전까지 활약하던 샤샤를 선호하지 않았고, 그를 대신해 유고에서 영입한 마니치를 주전으로 낙점한다.
184라는 작지 않은 키에도 불구하고 빠른 발로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마니치는 훌륭한 발기술로 PK를 만들어 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고, 첫 시즌 8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선보인다.
마니치가 폭발하게 된 것은 97년 이차만 감독의 부임과 함께였는데, 이전까지 경쟁자였던 샤샤와 투톱 체제를 선보이며 13골을 기록, 김현석과 스카첸코에 이어 득점랭킹 3위에 오르며 날아오르고 대우는 해당시즌 3관왕을 한다. 이때 마니치는 두개의 리그컵에서 득점왕에 오른다.
그러나 97 IMF의 폭탄을 맞은 대우는 주전 선수를 지킬 자본이 없었고, 하석주는 이적으로, 마니치는 임대로 함께 일본으로 향하게 된다.
일본에서 부산을 잊지 못한 마니치는 임대가 끝나고 99년 대우로 복귀, 9골 9도움을 기록하며 도움 순위 6위에 오르는 등 활약을 이어간다.
이후에도 최소 7골 이상씩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이어갔던 마니치이지만 이별은 그닥 좋지 못하였다.
00년 IMF 파동으로 무너져가던 대우 로얄즈를 현대에서 인수, 부산 아이콘스라는 이름으로 재창단하게 된다. 2002년 10월, 계약이 종료되는 마니치는 재계약 의사를 타진했으나 구단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대폭 인하된 연봉을 제시, 타 구단의 이적 제의까지 거부하여 미아상태로 두게되고 마니치는 유럽으로 떠나며 부산과 이별하였다.
이후 인천 등에서 뛴 후 은퇴, 현재는 세르비아에서 아마추어 팀 코치를 하고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마니치는 굉장히 다혈질적인 선수였는데 시즌마다 카드를 최소 5장씩은 받던 선수이다.
일화가 하나 있는데 포항과의 경기중 관중석에서 라이터가 날라오자 라이터를 관중석으로 다시 던져버린 일화가 있다.
수상
97 K리그 베스트 11
1999~2003
DF 조란 우르모프 '우르모브'
105경기 17골
도움왕을 차지한 수비수
1999년 여름에 처음 대우에 합류한 우르모브는 절반 남짓한 시즌동안 12경기를 뛰며 나름대로 많은 경기를 뛰었다.
그러나 수비력이 좋지 못했던 우르모브는 주전감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00년 김호곤 감독이 부임하면서 그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마니치, 우성용 등의 공격수가 받혀주던 부산은 좌풀백 우르모브의 크로스를 주요 공격 루트로 삼았고, 01 시즌에는 부산이 6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11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도움왕과 베스트 11을 차지하게 된다.
2002년에도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부상과 폼 저하 등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2003년 이안 포터필드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는 반시즌 만에 7골을 몰아넣는 등 훌륭한 공격력을 뽐냈지만 포터필드 감독이 수비력을 근거로 그를 자유계약으로 풀어주게 된다.
이후 우르모브는 수원으로 이적하여 K리그에서의 커리어를 이어간다.
현재는 은퇴후 에이전트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수상
01 K리그 도움왕
01 K리그 베스트 11
기타
최근 우르모브의 인터뷰가 떳다. 관심있으면 읽어보는것도 좋을듯.
https://sports.v.daum.net/v/20190330152517272
https://sports.v.daum.net/v/20190330155411476
2000~2003
MF 아리 까스띠요 '하리'
94경기 15골
부산의 플레이 메이커
하리는 처음에 수원에 입단하며 K리그를 밟게된다.
페루에서 뛰었던 하리는 페루 1부리그에서 44경기 24골을 집어넣으며 득점랭킹 2위를 기록하는등 나름 훌륭한 선수였고, 수원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하리를 영입하게 된다.
그러나 수원에서 단 5경기만을 뛴 하리는 전반기가 끝나고 이적시장에 나오게 되었고, 수원 감독이었던 김호 감독이 고향 후배 김호곤 감독에게 하리를 추천하며 부산의 유니폼을 입게된다. 우성용, 마니치 등 리그 탑급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한 하리는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이고, FA컵 준우승 등의 성과를 낸다.
하지만 2002년, 부산이 우성용과 마니치를 이적시키면서 하리를 공격수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하리는 흔들기에 능했지만 골을 넣지 못했으며 이로인해 03시즌에는 좋지 않는 폼을 보이게 된다.
이후 성남으로 이적하여 부산을 떠나게 된다.
2003~2004
FW 앤디 쿠크 '쿠키'
49경기 22골
K리그의 인자기
이안 포터필드 감독이 들어오면서 제이미와 함께 데려온 잉글랜드 출신의 용병.
03년 여름에 이적하여 단 반시즌만에 22경기 13골을 기록하며 부산의 핵심 플레이어가 된다. 반시즌만에 리그 득점랭킹 10위에 기록되며 부산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리그에서는 수원의 나드손이 반시즌 18경기만에 14골을 집어넣는 바람에 묻힌감이 있다.
2004년에는 리그 6골이라는 많지않은 골을 기록하였지만, K리그가 전체적인 빈공에 시달리며 리그 득점순위 10위를 기록, 이후 브래드포트 시티로 이적하며 부산에서의 짧은 동행을 마친다.
설명에서도 써놨지만 특출난건 딱히 없는데 골은 잘넣는, 소위 인자기과의 선수.
https://www.youtube.com/watch?v=gyXr_HmqvAw
골 영상을 한 번 보자.
2005~2006
MF 아지우송 페레이라 '뽀뽀'
66경기 24골
부산 역사상 최악의 선택의 주인공
브라질 하부리그에서 뛰다가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게된 선수.
2004년 FA컵에서 우승한 이안 포터필드 감독은 공격수의 영입을 원하게 되었고, 이때 영입된게 바로 루시아노와 뽀뽀이다.
루시아노와 뽀뽀는 괜찮은 조합을 선보였고, 전기리그 우승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4강을 이끄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즌이 종료된 이후 부산은 뽀뽀를 계약해지하며 떠나보내려 하였지만 다른 선수 영입에 실패하자 뽀뽀를 재영입하여 2006 시즌을 준비한다.
그리고 2006년, 뽀뽀는 시즌 36경기 20골을 박아넣으며 통합 득점왕을 차지하였고, 베스트 11에 등극하는 등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10월 29일에는 FC서울과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부산의 1000호골을 넣기도 한다.
이후 당연히 부산과 재계약 할 줄 알았던 뽀뽀는 엔디 에글리 감독이 부임하면서 '본인의 축구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팀을 떠나 매남으로 향했고, 거기서 까보레와 함께 대활약을 하며 매남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큰 힘이 된다.
뽀뽀는 양발 사용과 프리킥 처리에 능했는데, 2006년 전남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 골키퍼 김영광이 지키는 골문에 프리킥을 차서 골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선수가 먼저 움직였다는 판정으로 다시 한 번 차게 되었는데, 이때도 성공하여 2번 연속 성공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수상
06 K리그 베스트 11
2006
FW 완데르송 지 파울라 '소말리아'
9골
유럽 출신의 품격
아메리카 미네이루, 엑셀시오르, 페예노르트 등에서 뛰었던 선수. 소말리아라는 별명은 페예노르트에서 뛸때 그의 팀 동료들이 소말리아 해적을 닮았다고 붙였다고 한다.
이안 포터필드 감독이 2년간 공을 들여 영입한 선수로, 느린 발에 피지컬 역시 좋지 못하였지만, 확실한 골결정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이다. 특히 뽀뽀와 4경기 9골 3도움을 합작을 하는 등 부산의 행복한 2006년을 보내게 해준 선수 중 하나. 이외에도 5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부산 팬들에게는 잊지못할 선수 중 하나이다.
그러나 1년 임대로 온 선수이기에 잡지 못하고 2006년을 끝으로 작별하게 된다.
2011~2012
DF 에데르 바이아누 '에델'
53경기 1골
부산의 벽
2011년 부산은 따시오, 펠리피, 반덴브링크 등을 영입하였으나 3명이 모두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치면서 셋을 방출하고 여름에 수비수인 에델과 공격수 파그너를 데려오게 된다. 이 둘의 활약 덕분에 후기리그에서 5위를 차지한 부산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고, 이후 에델과 계약을 연장하게 된다.
2012년에는 파그너의 폼 저하와 황재훈, 여효진 등의 부상으로 시즌 내내 고생했던 부산이지만 에델은 시즌 44경기 중 41경기에 출전하며 철강왕의 포스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겨울 추위에 고생하여 폼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로 재계약 협상은 결렬되었고, 이후 창춘 야타이로 이적하게 된다.
2011~2014
FW 파그네르 시우바 '파그너'
101경기 26골
윤성효의 페르소나
브라질에서 뛰고있던 파그너는 2011년 여름 부진을 겪고 있던 부산으로 임대오게 된다.
데뷔전부터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던 파그너는 반시즌 동안 11경기 6골을 넣으며 부산의 핵심선수로 부상, 이후 3년 계약으로 완전이적을 하게된다.
하지만 2012년 들어 폼이 급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8월 강원전에는 경기를 치루던 도중 교체아웃이 되자 유니폼을 집어던지는 등의 불만을 품게된다. 특히 이로인해 벌금과 R리그 출전이라는 징계가 내려졌는데 R리그에서 전반전을 치룬 후 무단이탈을 하는 등 사실상 부산에서 뛰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보통 구단이었으면 파그너를 방출했겠지만, 돈없는 축구협회장의 구단인 부산은 그냥 용서하기로 하고 13시즌을 준비했다..
그리고 세제믿윤, 400억의 사나이 윤성효가 부임한 이후 폼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12시즌 파그너와 함께 폼이 떡락한 임상협과 함께 부활하였으며 호드리고, 윌리암 등 타 외국인들이 정신을 못차리는 동안 시즌 8골 1도움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갱신, 부산을 시즌 6위로 이끈다.
14시즌에도 역시 폼을 끌어올리며 10골 3도움을 기록하며 또 한번 커리어 하이를 갱신하였고, 높아진 몸값을 잡지못한 부산은 파그너를 자유계약으로 풀어주게 된다.
2014~2015, 2016
MF 니우송 히카르두 주니오르 '닐손주니어'
60경기 3골
舊물로
2013년까지 핵심 선수로 활동하던 박종우가 광저우 푸리로 이적한 이후 대체자로 데려온 선수이다.
이전까지 브라질에서 뛰다가 제리 윤정환이 이끌던 사간토스에서 뛰었으나 J리그 스타일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후보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외국인을 후보로 쓸수 없다는 구단의 방침상 사간토스는 닐손주니어를 이적시키기 원했고, 이에 윤정환 감독이 윤성효 감독에게 추천하여 부산으로 이적하게 되었다고 한다.
3백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닐손주니어는 훌륭한 활약을 펼쳤고, 이로인해 최하위까지 떨어졌던 부산은 반등하여 8위의 성적으로 끝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기복있는 플레이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고, 이후 윤성효 감독이 경질되자 공격을 강화하겠다는 부산의 결정으로 팀을 떠나게 된다.
이후 브라질 세리이 C에서 플레이하던 닐손주니어를 2016년 전반기를 조진 부산이 다시 영입하였고, 이번에는 최영준 감독이 그를 주전으로 세우며 신임을 받게된다. 이미 검증된 자원인 만큼 훌륭하게 적응하여 팀의 반등을 도왔다.
그러나 현재는 고인이 된 조진호 감독이 부임하고 외국인 판을 새로 짜면서 닐손주니어는 다시 한 번 부산을 떠나게 되었고, K리그2의 부천으로 이적하게 된다.
2015
FW 웨슬리 스미스 아우베스 '웨슬리'
32경기 8골
K리그1 공무원
브라질에서 나름 주목받는 자원이던 웨슬리는 어린 나이에 주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거머쥐는 등 브라질에서 괜찮은 시간을 보냈었다.
코린치앙스로 이적한 웨슬리는 19세의 나이에 전남 드래곤즈로 영입되며 K리그와 연을 맺게 된다.
이후 3년간 2번의 전남 생활과 강원을 한 번 거친 웨슬리는 모두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브라질로 한 시즌 돌아간 이후 2015년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게 된다.
윤성효의 양아들이라 불리던 베르손과 배천석이 둘다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웨슬리에게 공격부담이 몰리게 되었고, 공격진에서 홀로 활약을 이어가게 된다. 전반기가 종료되면서 부산은 엘리아스와 빌, 김동섭 등을 영입하였지만 이들 역시 후반기 내내 부진하며 웨슬리의 어깨를 짓누르게 된다. 특히 에이전트와의 마찰과 팀의 계약상 문제가 겹쳐지며 세금 체납 문제가 발생하여 후반기에는 경기에 뛸수 없었고, 2015년을 끝으로 강등된 부산을 떠나게 된다.
2016
FW 윌리앙 포프 '포프'
38경기 18골
2016 부산의 희망
브라질 주 리그와 세리이 A 등에서 능력을 드러내었던 포프는 15시즌 강등되어 2부따리가 된 부산 아이파크의 이적제의를 받고 부산으로 이적하게 된다.
시즌 초반부터 최영준 감독의 신임을 받은 포프는 2라운드부터 주전으로 나서게 되었고, 시즌이 진행될수록 적응에 성공하여 16시즌 18골을 집어넣고 베스트 11을 수상하게 된다.
시즌이 종료된 후 클래식 구단으로의 이적설이 돌기도 하였으나 일본의 아비스카 후쿠오카로 이적하게 되며 부산을 떠나게 된다.
수상
16 K리그 챌린지 베스트 11
2017
DF 다니 모라이스 '모라이스'
27경기 1골
10년만에 밟은 한국에서 보여준 훌륭한 경기력
인테르나시오나우의 유망주였던 모라이스는 동 구단에서 데뷔전을 치른 후 꾸준히 세리이 A에서 플레이 하던 선수였다.
2015년 산타크루즈에서 활동할때를 제외하고는 보타포구, 바이아, 샤페코엔시 등의 구단에서 뛰었던 모라이스는 17시즌을 앞두고 부산에 영입되면서 한국땅을 밟게 되었다.
재밌는 점은 2007년, It's Daejeon 축구대회에 인테르나시오나우 소속으로 대전을 상대하며 10년전 한국 땅을 밟았던 것.
이 때문일까 부산에서 훌륭하게 적응한 모라이스는 부산에서의 대부분에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고, 루키안과 김현성 등의 공격진이 부진할때 수비에서 제몫을 해주며 부산 팬들에게 사랑받게 된다.
특히 험악한 외모와는 다르게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팬서비스 역시 좋던 훌륭하던 선수이다.
그러나 시즌이 종료되고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한 모라이스는 다시 산타크루즈로 돌아가며 부산의 유니폼을 벗게된다.
2017~
MF 호물로 조제 다 시우바 '호물로'
65경기 17골
최초의 PK 해트트릭을 달성한 선수
브라질의 바이아와 브라간치누 등에서 활약한 호물로는 플레이 메이킹 등에서 괜찮은 점수를 받던 유망주이다.
그러나 2016년 떠난 브라간치누 임대에서 단 2경기 출전에 그치며 한풀 꺾인 모습을 보여준 호물로는 17시즌을 앞두고 부산으로 임대 이적하게 되며 부산과 연을 맺는다.
시즌 초반부터 훌륭한 킥으로 부산의 공격을 이끌며 첫 11경기 중 9경기를 출전하며 주전자리를 꿰찰줄 알았던 호물로는 시즌 중반부 수비력의 문제로 9경기를 연속으로 결장하게 되어 팬들을 우려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후 조진호 감독의 조련으로 다시 주전 자리를 꿰찬 호물로는 완전이적에 성공하였고, 18시즌에는 베스트 11과 도움왕을 수상하는 등의 활약을 바탕으로 현재까지도 부산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주 펼쳐졌던 부천과의 K리그2 4라운드 경기에서 페널티킥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MVP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수상
18 K리그2 도움왕
18 K리그2 베스트 11
다음편은 괴랜입니다.
한편 정도는 걍 날로 먹으려고요.